반병률 교수,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의병부터 독립군 활동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온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나.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한데 대표적인 인물이 홍범도다. 직업을 의병이라 할 정도로 자기인식이 분명한 장군을 두고 업적이 어떻고 따지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v.daum.net/v/202309090831…
오사카 아사히신문의 경성 특파원이 1919년 3월1일 서울 광화문 기념비문 앞에 운집한 군중을 촬영한 사진. 당시 일본 특파원은 ‘조선인의 폭동’, ‘불온한 격문 배포’, ‘이러한 사태는 조선 개벽 이래 처음 보는 현상’ 등으로 왜곡해 기술했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제공
1935 년에 구 소련의 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으로 가신 홍범도 장군님 이십니다. 그 당시에는 빨치산은 없었습니다. 그 당시는 파르티잔만 있을 뿐 입니다. 육군사관학교나, 독립운동사에 관한 역사학계에서도, 용어의 설명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홍범도 장군님께서는 독립운동가, 파르티잔이시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추지 못하고,잘못되고 얄팍한 지식으로 특히 독립운동사에 대한 무지와 무식한 놈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시켰다.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다.독립을 위해 목숨과 재산까지 바쳤으나, 지금까지 평가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의 영령앞에 후손으로써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민주화 세대가 독재와 맞서 피 흘리며 민주화를 앞당겼다. 조중동 등 국내 언론들이 앞다투어 박정희, 전두환 찬양과 우상화에 열을 올릴 때 민주화 운동 세대가 대한민국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러 피까지 흘렸는 데, 운동권, 운동권 매도하며 독립운동사에 이어 민주화운동도 삭제하려 한다.
월요일에 이어 민주당 영입인재 김용만씨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지난 인터뷰가 군사와 방위사업 전문가로서 그를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백범 김구의 증손자로서, 보훈과 독립운동사 전문가로서의 그를 다룹니다. 최근 화제가 되는 영화 '독립전쟁'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alook.so/posts/w9tyDM6